“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필자는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마다 이 문구를 떠올린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최면이랄까. 이따금씩 인간의 삶을 여행 혹은 모험에 빗대어 표현하게 되는데, 대륙의 끝자락에 이르러 새로운 바다와 접하게 되면 기쁨과 기대감이 크겠지만 동시에 걱정과 두려움 또한 느껴지기 마련이다.
고작 개인이 글 몇 자 적는다고 무슨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글도 말처럼 한 번 내뱉으면(활자로 존재하는 순간) 주워담기 어려우므로 엄중하고 두려운 행위로서 절실하게 다가온다. 물론 글쓴이의 사회적 위치나 파급력 등의 여러 요소들을 감안한다면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으나 말과 글이라는 게 의도치 않았음에도 전혀 예상 밖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항상 삼가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살아오면서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나 생각 등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대화나 토론의 시간을 가졌을 때에 말이 생각을 못따라 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내 머릿 속에서는 분석과 함께 해법까지 이미 내놓은 상황이라 막상 말을 하다보면 뭔가 성급해 지면서 설명 혹은 논리가 빈약해지고 결론 혹은 주장 만을 되풀이하고 앉아있다.
답답한 대화를 이어가던 와중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말이 생각을 못따라 간다면 글은 어떠한가. 일단 글은 시간의 제약에 있어 말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듣고 있는 상대방의 시간을 뺏는다는 미안함에서 벗어나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퇴고’라는 궁극적인 치트키가 있기에 글쓴이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쓸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필자에게는 글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작하는 순간 도전이 된다”
– 조오련
각자가 태어나서 처음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어린 시절 일기장이나 독후감 혹은 글짓기 등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이러한 시기부터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느꼈고, 작문보다는 그림일기나 사진촬영에 충실(?)하게 되었다. 그렇다. 무언가를 장시간동안 가만히 앉아서 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창시절에도 시험기간이나 리포트작성 말고는 딱히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본인 스스로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존재임을 확신하며 큰 불편함 없이 살아오다 인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바로 대학원에서 논문작업이었다. 주 7일을 학교 연구실에 홀로 앉아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빈 용지 만을 하염없이 바라 보는 날이 이어졌다.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무모한 도전 중 하나였지만 끝내 극복하였고, 본인 스스로도 새로운 모습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은 노력해보니까 된다는 것.
“언젠가 당신이 떠나 보낸 빈 병이 누군가에게 열리고 읽힐 것입니다”
– 파머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필자는 글이 지닌 위력이란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위대한 고전이 인류의 철학과 사상을 이끌어 온 바는 말할 필요도 없고, 마음을 담은 편지글은 나와 타인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곤 한다. 법원 판사의 판결문은 한 개인이나 단체의 미래를 좌우하기도 하고, 신문에 실린 짤막한 사설이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격언이 생겨 났겠는가.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서 중압감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 또한 인간사의 묘미. 지금 이 순간, 새로운 한 걸음을 힘차고도 조심스럽게 내딛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에 필자는 ‘창조적 지성인‘으로써 좋은 글, 좋은 기획, 좋은 콘텐츠로 인류와 국가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현재는 미숙하고 형편없을지 모르겠으나 꾸준한 노력으로 발전한 미래의 모습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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